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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안준용 기자 |    입력 2015.03.03

서울의 한 사립대 사회복지학과 재학생 신모(24)씨는 졸업을 앞두고 최근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 단체에서 일하겠다'는 오랜 꿈을 접은 것이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 특히 유망한 학과라 듣고 입학했는데, 유망은커녕 절망"이라며 "사회복지사 자격증만 있으면 사회복지 단체 취업이 쉬울 줄 알았지만 상대 출신들에게 밀려 서류전형조차 통과 못 하고 내리 낙방하면서 '이럴 바엔 더 늦기 전에 새 길을 찾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요즘 취업을 앞둔 사회복지학 전공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탓에 기업체보다 평균 임금이 낮은 사회복지 단체에도 조건이 좋은 상경 계열 전공자가 대거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취업 시장 내 상경 계열 선호 현상은 기업체를 넘어 사회복지 단체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주요 기관 채용 현황만 봐도 경제·경영학과 등 상경 계열 전공자(복수 전공 포함)를 우대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올해 신입 인턴 사원으로 채용된 6명 중 4명이 상경 계열 전공자다. 사회복지학과 출신은 '0명'이다. 대한적십자회 신입 사원 35명 중 상경 계열 전공자는 12명이지만 사회복지 전공자는 1명에 불과하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입사자 33명 중에도 상경 계열 전공자만 13명에 이른다. 이 밖에 규모가 큰 국제 구호단체 등에서도 상경 계열 전공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김진하(47) 팀장은 "일단 뽑은 다음 '우리가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복지 관련 경험이나 활동에 대해 특별히 우대하진 않는다"고 했다.

사회복지학과 출신들을 외면하는 것은 NGO(비영리단체)나 사회복지 관련 공단·재단뿐만이 아니다. 사회복지학 전공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기업 CSR팀(사회공헌팀) 신입 사원도 대부분 상경 계열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CSR 부문 지원자들도 애초에 스펙 자체가 비교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꼭 사회복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요즘엔 영어 실력 같은 스펙이 충분하면서 해외 자원봉사 경력까지 갖추고 있는 지원자가 많다"고 했다.

결국 사회복지 단체 취업을 목표로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한 학생 상당수가 뒤늦게 진로를 바꾸거나, 취업에 유리한 경제·경영학과를 복수 전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모(25)씨는 "다른 전공자들이 어학 등 다른 스펙을 쌓는 동안 우린 봉사 활동 하는 시간이 많은데, 정작 취업엔 별 도움이 안 된다"면서 "우리끼리 '이제 복지사 자격증은 필요 없는 것 아니냐' '차라리 외국어를 전공하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4년제 중위권 대학 사회복지학도들의 불만은 특히 더 높다. 경기도의 한 4년제 대학 사회복지학과 재학생 A씨는 "최근 지도교수님과 상담했는데, '자네 스펙으론 복지 단체에 취업하기 어렵다'고 했다"며 "갈 데가 없는데, 그럼 공장 생산직으로 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도 근심이 많다. 성균관대 엄명용 교수(사회복지학)는 "특히 국제 구호단체 같은 곳에선 봉사 경험이 풍부한 사회복지학과 출신들의 특장점이 분명히 있다"며 "사회봉사 단체일수록 기업체와 달리 스펙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원자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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